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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트리비아

페어플레이 차트로 엿보는 Spiel '22

by RE: 아날로그 2022. 10. 12.

아직 COVID-19는 남아있지만 전 세계의 방역 당국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단계를 조금씩 완화하고 있고, 덕분에 슬슬 오프라인 행사들이 자리를 되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드게이머들의 축제 에센 슈필이 지난주에 막을 내렸습니다. 포스팅으로는 소식이 조금 늦었지만, 보드게임 커뮤니티 등지에선 독일을 직접 다녀오신 분들의 생생한 후기가 사진과 함께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에센 슈필에서는 B2B와 B2C가 모두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중요한 자리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이에 따라 올해와 내년에 이르기까지 어떤 게임이 흥해왔고 앞으로 더욱 빛을 볼 수 있을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Das Spielermagazin 팀의 페어플레이 차트입니다. 에센 슈필의 마지막 날 공식 트위터를 통해 올라온 페어플레이 차트인데, 목록에 있는 게임을 한번 같이 살펴보도록 합시다.

 

*여기서 기재하는 BGG Weight는 작성일을 기준으로 합니다. 이후 게이머들의 평가에 따라 수치는 변할 수 있습니다.

 

Endauswertung(최종 평가). 마지막 날까지 최소 33명 이상의 평가를 받은 고득점 게임의 목록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 슈뢰딩거의 고양이 / BGG Weight: 1.92 / 2-5인 / 20-40분 / 트릭 테이킹

: 트릭 테이킹 카드게임이지만 수트(카드 컬러)가 모두 중첩되어있다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 보드게임입니다. 카드를 내면서 어떤 수트인지를 선언하는 과정이 있고, 게임 중에 누군가가 가령 빨간색 7에 해당하는 고양이 카드를 선언했다면 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다른 누구도 빨간색 7을 낼 수 없게 됩니다. 또, 선플레이어가 낸 카드와 같은 수트를 낼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해당 수트를 낼 수 없는데, 위의 조건과 합쳐져서 카드를 아무것도 낼 수 없는 상황이 오면 '패러독스'가 발생해 그동안 따낸 트릭만큼 감점당합니다. 독특한 점수 시스템으로 이미 2020년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기존의 3-4인 게임을 2-5인까지 확장했고 컴포넌트를 업그레이드해 이번 에센 페어플레이 차트 맨 위에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2년 전에 출시된 필러 게임(Filler, 헤비한 볼륨의 보드게임 사이에 즐기는 대략 30분 이하의 짧은 보드게임)이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의아해하실 분들도 물론 있을 것입니다. 우선 페어플레이 차트는 SDJ처럼 Kennerspiel des Jahres를 따로 분리하지도 않았기에 난이도와 상관없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게임 순서대로 정렬해두었을 것이며, 오히려 에센 슈필이 진행되는 3박 4일의 짧은 시간에 많은 심사위원이 평가하기 좋은 게임은 매니아 게임보다는 대중적인 게임일 것으로 생각해봅니다. 게다가 슈뢰딩거의 고양이 자체도 Weight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반인의 시선에서 볼 때 난이도가 결코 호락호락한 게임은 아닙니다. 패러독스를 피하고자 전략을 짜는 과정은 게이머들의 입맛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고 봅니다.

 

Tribes of the Wind

 

# Tribes of the Wind / BGG Weight: 2.25 / 2-5인 / 40-90분 / 타일 배치

: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땅에서 플레이어는 자기 부족을 이끄는 부족장이 되어 삶의 터전을 일궈냅니다. 카드를 내려놓으며 진행하는 게임이지만, 카드의 요구 조건도 다양하고 다른 플레이어들의 카드에 따라 자신의 카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자원을 얻고 숲을 가꾸며 새로운 마을과 사원을 짓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문명류 시뮬레이션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보드게이머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삽화가 뱅상 듀트레 씨(누구신지 잘 모르겠다면 한국에서는 '딕싯(2008)', '셜록 13(2013)', '라이징 파이브(2017)' 등의 그림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가 참여해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튜링 머신

 

# 튜링 머신 / BGG Weight: 2.00 / 1-4인 / 20분 / 소거법

: 정해진 순서의 세 자리 숫자 암호를 맞추는 게임인데, 테이블에 놓인 조건에 맞는 숫자 패널을 가지고 와 모두 겹치면 나오는 빈칸을 대조해보며 정답을 추리해가는 과정이 독특합니다. 스도쿠 또는 논리 퍼즐처럼 추론하는 재미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실 것이며, 기존의 소거법 장르 보드게임들보다도 상호작용이 더 적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Q.E.(양적 완화).

 

# Q.E. / BGG Weight: 1.62 / 3-5인 / 45분 / 경매, 셋 컬렉션

: 플레이어가 각자 국가(중앙은행)가 되어 파산 위기의 기업들에 돈을 투자해 회생시키는 게임인데, 그 와중에 투자량이 가장 큰 플레이어가 통화 팽창의 책임을 지고 게임에서 탈락합니다. 양적 완화라는 이름에 겁을 먹을 필요 없이 제법 간단한 과정으로 경매의 재미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히려, 심각한 분위기보다는 눈치싸움을 하며 유머있게("누가 그딴 회사를 사냐?"라는 식으로) 경매인을 놀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상황을 즐기게 되더라고요. 이 게임도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과거 출시된(2019년) 작품이지만 이번에 다시 차트에서 볼 수 있었으며,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한글 번역을 거쳐 판매 중이기 때문에 쉽게 구해서 즐겨보실 수 있습니다.

 

스플렌더 듀얼. 올 것이 왔다.

 

# 스플렌더 듀얼 / BGG Weight: 2.00 / 2인 / 30분 / 셋 컬렉션

: 예전부터 이미 기대하고 있던바, 스플렌더 듀얼도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받았습니다. 보석을 가져가고 리필하는 방식이 새로워졌으며, 승리 조건도 세 종류로 다양해져서 상대방이 어떤 목표를 향해 달리는 지도 신경 써서 플레이해야 합니다. 스플렌더의 룰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면 금방 적응할 수 있고, 스플렌더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 볼륨감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에 어렵지 않게 룰을 익힐 수 있을 것입니다. '세븐 원더스 듀얼'에서도 볼 수 있었던 특유의 수 싸움브루노 카탈라 스타일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스플렌더가 탄탄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기에 조만간 공식 유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크로폴리스

 

# 아크로폴리스 / BGG Weight: 1.63 / 2-4인 / 20-30분 / 타일 배치

: '스프롤폴리스(2018)', '칼리코(2020)', '캐스캐디아(2021)' 등 타일 배치 장르는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이번에 등장한 아크로폴리스는 타일을 위로 쌓아 올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타일을 덮으면 그 밑에 깔리는 내용물은 더 이상 계산에 포함하지 않으며, 각각의 색깔이 나타내는 건축물마다 점수 계산 방식이 달라 각자만의 방법으로 점수를 뽑아내려 할 것입니다. 처음 언급했던 칼리코나 캐스캐디아처럼 드래프트 기반의 타일 퍼즐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이러한 장르의 게임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집단에서도 무난히 모두가 즐기기 좋을 게임입니다.

 

아티와

 

# 아티와 / BGG Weight: 2.94 / 1-4인 / 30-120분 / 일꾼 배치

: 일꾼 배치 장르의 보드게임에서 탄탄한 팬덤을 가진 '우베 로젠버그' 씨의 작품이 올해에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일꾼 3마리로 7라운드를 진행하기에 총 21번의 일꾼 배치가 이루어지며, 각각의 요소가 맞물리게 설계된 구조가 제법 재미있습니다. 야생 동물을 옮겨 나무 수입을 얻고, 나무를 제거해 과일 수입을 얻고, 과일을 제거해 과일박쥐를 유인하고, 이 박쥐가 또다시 나무를 심는 사이클이 반복되며 나름의 엔진이 돌아가게 됩니다. 리뷰로만 접해보아서 아직 플레이해보진 못했지만, 간만에 차트에서 마주친 정통 유로게임이라 반가운 기분이 듭니다.

 

에버그린

 

# 에버그린 / BGG Weight: 2.00 / 1-4인 / 45분 / 타일 배치

: 위에서 소개한 아크로폴리스처럼 오픈 드래프트로 진행되어 자기만의 숲을 일궈나가는 게임입니다. 하나하나 세트를 맞춰나가며 점진적으로 점수 성장이 보이는 일반적인 타일 배치 게임보다는 좀 더 드라마틱한 점수 성장이 일어나는데, 연결된 숲이 중반부터 점수를 뿜어내기 시작해 후반부에 다 함께 각자만의 스노볼링을 자랑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디자이너 얄마 하흐(Hjalmar Hach) 씨의 이전 작품인 '광합성(Photosynthesis, 2017)'의 계승작으로도 불리는데, 우리나라에 유통된다면 두 게임을 비교해보며 어떤 부분에서 업그레이드되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카이트

 

# 카이트 / BGG Weight: 1.00 / 2-6인 / 10분 / 협동

: 연날리기를 소재로 하는 협동 게임인데, 연을 날리면서 높이를 조절하는 재미를 모래시계로 살렸습니다. 색깔로 구분된 연의 종류에 따라 모래시계가 흐르는 시간이 다르며, 이를 이용해 단 하나의 모래시계라도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까지 모든 카드를 플레이하면 승리합니다. '실시간'에 '협동'까지 섞여 간만에 심장 떨리는 파티게임 하나 제대로 나온 것 같습니다!


에센 슈필의 마지막 날 페어플레이 차트를 함께 살펴보았는데,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이야기할 때도 언급했지만 이는 절대적인 지표라기보다는 현장에서 심사위원들이 부여한 평점이기에 대중성이나 리플레이성이 좀 더 크게 반영되었을 수 있습니다. COVID-19를 극복해내고 재개된 자리이다보니 그사이에 빛을 보지 못했던 작품들이 다시 등장하는 경향도 확인할 수 있었고, 전반적으로 타일 배치와 셋 컬렉션 장르가 힘을 입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에센 슈필에서의 B2B 거래를 통해 빠르면 올해 겨울, 늦어도 그다음 해 상반기에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을 텐데, 다른 신작들도 조만간 둘러볼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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