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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날로그 - 매장 이야기

보드게임 룰 잘 설명하기

by RE: 아날로그 2022. 9. 23.

보드게임카페, 그중에서도 특히 1세대 카페의 숙명은 룰과의 사투입니다. 사장 혹은 직원이 직접 룰을 설명해야 하기에, 보드게임카페는 늘 잔룰과 싸우고 오류 플레이를 죽여야 하는 피투성이의 현장입니다. 보드게임 안에 룰북이 들어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손님들한테 직접 한 번 플레이 예시를 설명하는 것이 빠르기에, 룰을 설명하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보드게임을 친구나 연인한테 영업하고 싶으시다면, 아무래도 이해가 잘 될 수 있도록 룰 설명을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 역시 완벽한 능변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몇 년에 걸쳐 게임을 설명해오면서 느낀 핵심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보드게임 룰을 설명하기 위해 모든 요소를 얼기설기 엮어보아야 한다.

 

첫 번째 포인트는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가 게임을 익혀야 합니다. 게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게임을 알아야겠지요.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보드게임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자주 나가는 게임 위주로 설명하게 되어서 사람들이 뜸하게 찾는 보드게임은 룰을 깜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룰북에서는 컴포넌트의 이름으로(예를 들어 '개발 카드', '교황의 총애' 처럼 게임의 스토리에 이입하게 만드는 명칭) 서술된 경우가 많아, 적어도 각각의 컴포넌트가 게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보는 것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찮으면 이미지 트레이닝하거나, 아예 혼자서 여러 명 역할을 맡아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라도 게임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포인트로, 몰입을 위한 설명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사람들한테 게임의 배경 스토리, 게임의 구조, 메인 메커니즘을 제시해 룰 설명을 들을 프레임워크를 구성해야 합니다. 보드게임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히 구조와 메커니즘을 잘 모를 것이기에, 좀 더 쉽게 축약해서 '이 게임은 어떤 게임이다'라는 것과 '이 게임에서 개개인의 목표는 어떤 것이다'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승점 내기라고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승점을 얻기 위해 해야 할 기본적인 갈래를 먼저 언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 스플렌더

: 이 게임은 여러분이 르네상스 시대의 무역상이 되어, 광산(무역로)을 개발하고 보석을 모아 귀족의 환심을 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분의 명예 점수를 쌓아나가는 게임입니다.

*이후의 모든 예시도 스플렌더의 룰 설명을 예로 들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게임이 어느 정도의 볼륨이 있다면, 자신의 차례에 어떤 액션을 할 수 있고 어떤 방법으로 승점을 얻을 수 있는지도 서두에서 간단하게 설명하면 더욱 좋습니다. 메커니즘과 같은 전문적인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서두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잡으면 모두가 게임의 설정에 몰입하기도 좋고, 룰을 본격적으로 설명할 때도 서두의 설명에 기반해 정보를 머릿속에 담기 편해집니다. 마치 책의 머리말과 목차를 읽으면 책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세 번째 포인트로, '당장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우선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잔룰이 많은 게임의 경우,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이 세세한 규칙까지 외우려고 시도하다가 갈피를 못 잡아서 막상 턴이 시작했을 때 '그래서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래서 일단 자신의 턴에 진행할 수 있는 메인 액션들을 빠르게 설명하고, 이후에 나머지 요소들을 각각의 카테고리에 맞게 집어넣어 설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예)

: 자신의 차례가 오면 여러분은 네 가지 액션 중 하나만을 골라서 수행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다른 세 종류의 보석 하나씩 가져오기', '한 종류의 보석 두 개 가져오기', '개발 카드 구입하기', '개발 카드 예약하기'가 있습니다. (이후 각각의 액션에 대한 부연 설명을 덧붙입니다.)

 

수업을 진행하는 사람이 손짓과 밑줄긋기 등으로 강조하는 키워드는 중요하다는 뜻이다.

 

네 번째 포인트강조에 있는데, 특히 오류 플레이의 가능성이 높거나 많이 헷갈리는 부분, 또는 중요한 부분을 강조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도 중요한 포인트는 선생님들이 톤을 높이거나 칠판의 판서 내용에 밑줄을 긋는 등 강조를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가 게임을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로 톤을 높이거나, 손동작을 이용해 행동을 강조하면 됩니다.

 

예)

: 제가 액션 소개로 귀족 타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귀족 타일은 액션을 사용해 가져오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이때 톤을 살짝 올리거나, 손으로 엑스자를 그어서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시켜봅시다.) 귀족 타일은 일종의 업적 개념과 비슷해서, 자신의 차례가 끝난 시점에서 해당 귀족의 비용에 해당하는 개발 카드를 보유하고 있다면 차례를 마친 후 가져오실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포인트는 이 모든 설명에 시각적인 예시를 항상 들어주는 것입니다. 특정 행동으로 자원을 가져오거나, 카드를 뽑는 등의 행위를 설명에 맞춰 실제로 보여주면, 각각의 행동이 어떤 행동이었는지를 기억하기 쉽습니다. 카드가 여러 종류가 있다면 그 차이를 뒷면의 색상 혹은 내용물의 차이를 직접 보여주며 설명해주시고, 아이콘으로 축약된 설명이 있다면 각각의 아이콘이 의미하는 바를 직접 실행해 보여주며 설명해 주시면 더욱더 효과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포인트는 룰 설명에 적당히 양념을 가미하는 것입니다! 듣는 이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끔 집어넣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센스 있는 설명은 게임의 이해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인간이 단 한 번의 설명만으로 모든 지식을 머리에 담을 수 있다면 우리의 학창 시절 수업과 성적, 학점이 그렇게까지 처참하진 않았겠지요. 스타 강사로 알려진 사람들이 수업 중간중간에 효과적인 예시를 집어넣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물론 수업과 관련된 주제겠지요!)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

여러분이 보석을 지불해 개발 카드를 구입했다는 것은, 새로운 광산을 찾았거나 새로운 무역로를 확보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해당 카드에 그려진 보석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다른 카드의 비용을 지불할 때 자신이 지어놓은 개발 카드의 보석을 항상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예)

개발 카드를 많이 모으다 보면 여러분이 보석 채굴과 무역으로 유명한 거상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명성을 전해 들은 귀족들은 자연스럽게 당신을 찾아와 친하게 지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귀족 타일은 당신이 이뤄놓은 것에 대한 보상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턴 소모 없이 귀족 타일을 가져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주요 설명을 끝냈다면, 게임의 정확한 종료 조건점수 계산 규칙을 설명할 차례입니다. 앞에서 설명을 잘 쌓아나갔다면 사람들이 승리 조건을 헷갈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특히 덧붙일 것이 '타이 브레이커(tie-breaker)'인데, 동점자가 생겼을 때 처리하는 규칙이 있다면 꼭 이야기해주시면 좋습니다. 설명을 모두 마쳤다면 질문이 있는 손님들의 대답을 이때 한번에 해결해주시면 되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첫 2~3턴이 진행되는 것까지 지켜보며 정정해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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