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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트리비아

게임 플레이의 속도를 올려라

by RE: 아날로그 2022. 9. 28.

컴퓨터로 즐길 수 있는 게임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고, 그에 따라 어느 정도 플레이타임에 차이가 생기기도 합니다. 도중에 저장했다가 불러와서 즐기더라도 한 판에 8~10시간은 거뜬히 걸리는 경영 또는 전략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와 다르게, 짧고 굵은 집중력으로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승부를 펼치는 단판 게임을 여러 판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드게임도 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장르가 있습니다만, 시간적 제약(턴제 진행으로 인한 시간 소모) 탓인지 짧은 게임은 파티 게임에 몰려있고 대다수의 장르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요구합니다. 난이도가 오를수록 대개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는 보드게임의 첫 번째 진입장벽으로 작용합니다. 게임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예상 플레이타임을 듣고 겁을 먹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드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진입장벽도 어느 정도 허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보드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대개 자신이 속한 친구나 지인 모임 집단에서 보드게임 '매니저'가 되곤 합니다. 보드게임과 관련해서는 대개 룰의 숙지와 전파를 책임지며, 보드게임 모임의 열쇠가 되곤 합니다. 그 규모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모임을 운영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킬 게임을 선정하고, 대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시간대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룰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서 모두의 이해도가 비슷하면 다행이지만, 모임 전체 혹은 누군가가 따라오지 못하는 일이 있어 만약 게임 플레이의 흐름 자체가 끊기면 그 탓을 매니저한테 돌리는 최악의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습니다. 당장 모든 상황과 사람을 바꿀 수 없다면 보드게임 문화를 전파하는 매니저로서 어떻게 플레이 시간의 기름기를 뺄 수 있을지 함께 짚어보기로 합시다.

 

우선, 이전에도 비슷하게 강조한 바가 있지만, 게임을 설명하는 사람부터 완벽하게 룰을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매장에서 손님들한테 룰을 설명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이따금 손님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질문(그중에서도 특히 잔룰)이 들어오고, 이를 룰북에서 찾아 다시 알려드리는 시간이 길든 짧든 침묵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을 처음 플레이하는 테이블일수록 이런 시간을 줄여, 설명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게끔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 그대로 게임의 매니저이기 때문에, 게임이 흘러가는 템포에 불필요한 리듬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 요점입니다. 그렇다면 룰 설명 이외에 또 다른 불필요한 리듬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장고하는 줄 알았는데 '내 턴이야?'라고 되물으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보드게임은 어느 정도의 견제 요소를 포함하더라도 '나의 플레이'에 집중하는 게임입니다. 적어도 내 차례가 진행중일 때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기 위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장고가 항상 나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 게임에서 이기고 싶어 하니까요. 다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은, 나머지 플레이어들의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차례를 마쳤다면 턴이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 좋지만, 이를 플레이어가 알렸음에도 다른 플레이어가 알아채지 못했다면 게임의 진행자인 여러분께서 직접 '플레이어 B의 행동이 끝났고, 다음 플레이어 C의 차례가 왔어요!'라는 식으로 각자의 턴 진행 순서를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더 나아가, 만약 첫 게임을 진행 중이라면 장고하는 플레이어를 어느 정도 설득할 필요도 있습니다. 일단 게임이 돌아가는 전체 흐름을 이해하면 다음 판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더욱 뚜렷이 보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지금의 선택지 하나하나를 너무 고심할 필요 없다고 환기해주도록 합시다.

 

일부 보드게임에서는 상대방의 턴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자신의 차례를 먼저 시작해도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자원 구매나 카드 드로우처럼 다른 플레이어의 난입이 있어서는 안 되는 단계라면 당연히 행동이 겹쳐선 안 되지만, 액션 외적인 행동(가령 자신이 받기로 예정된 자원 토큰을 가져오거나, 자신의 카드 덱을 섞는 행동)을 실행 중이라면 그동안 다음 플레이어의 턴을 진행하고 있어도 크게 방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임의 룰을 이해하고 있는 매니저가 이 상황을 조율하여 다음 플레이어가 턴을 시작해도 될지 신호등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토큰과 카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액션 외적인 행동 시간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게임의 볼륨에 따라서는 개인 공간이 꽤 많이 필요할 수도 있고, 테이블에 따라서는 플레이어 사이의 거리가 제법 멀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은행(자원을 쌓아둔 더미)과의 거리가 먼 플레이어는 자원을 얻거나 지불하는 데에도 물리적 시간을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특정 자원이 지나치게 부족한 것이 아니라면, 자원 더미를 나누어 두세 군데의 은행을 만들고 모든 플레이어가 언제든 자원을 수급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차이나타운과 같은 협상게임은 대화가 게임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출처: BoardGameQuest)

 

때론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상호작용(대화가 많이 필요한 협상, 토론 등)이 들어있는 게임이 있습니다. 룰에 따르면 토론의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가령 보난자 또는 차이나타운을 플레이하는 중에 협상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협상의 당사자가 아닌 플레이어들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게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열린 결말이 필요한 게임에서는 아예 플레이어끼리 사전에 시간을 협의하거나(3분 이내, 5분 이내 등), 게임의 구성물에 없더라도 모래시계(타이머)를 준비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물론 시간에 쫓겨 결정을 제대로 못 내릴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을 수는 있지만, 모든 대화와 토론이 성공적으로 결론지어지지는 않기에 고려해볼 만한 요소입니다. 감히 말해, 시간적 압박이 좀 더 올바른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괜찮은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게임 도중 헤매고 있다면, 적절한 수준에서 질문을 던져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혹은 룰 중에 헷갈리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며 길을 잃지 않게 하면 좋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지나치게 전략에 개입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게임을 끝낸 시점에서 '저는 단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와 같은 말이 나오면 게임에서 승리했든 패배했든 게임 경험이 썩 좋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에서 지더라도 자신의 결정으로 무언가를 이끌어냈다는 것이 중요하며, 능동적으로 게임을 이끌어나간 사람이 '한 판 더!'를 외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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