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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트리비아

스팀에 자리잡은 윙스팬 살펴보기

by RE: 아날로그 2022. 9. 27.

이 블로그에서 자세히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윙스팬'이라는 보드게임이 있습니다. 다양한 서식지에 새를 키우고 먹이를 모으고 알을 낳으며 승점으로 대결하는 엔진 빌딩 게임이며, 작성일 기준 BGG 24위를 지키고 있는 강자입니다. 스플렌더만큼이나 'Easy to learn, Hard to win'이라는 말에 걸맞으며, 온갖 다양한 새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합니다. 카드의 활성화 행동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스플렌더에 비해 카드 운이 조금 더 관여하고, 다른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이 다소 부족해 단체 솔리테어를 즐긴다는 기분을 주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잘 섞인 메커니즘이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경험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고 새의 능력으로 액션을 강화하는 빌딩의 재미도 잘 살렸기에, 출시되었던 그해(2019)에 올해의 전문가 게임상(Kennerspiel des Jahres)을 수상했습니다.

 

윙스팬 역시 스팀 플랫폼에 이식되었는데, 가격은 한화 20,500원으로 할인 이벤트를 만나면 50-60% 할인가로 10,500원까지도 내려가기도 합니다. 처음 다운로드하는 사람들은 놀랄 만한데, 스플렌더가 고작 104MB였던 것에 비해 윙스팬의 용량은 무려 1.19GB에 이릅니다. 난이도에 비해 보드게임의 디지털 용량이 제법 나가는 편인데, 이것 때문에 여러분이 망설일 필요는 없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의 특성에서 선보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꾹꾹 눌러담았기 때문입니다.

 

카드에 그려진 새가 살아서 움직이고 해설자가 새의 특징을 이야기해준다.

 

물리적인(또는 아날로그의) 게임을 디지털로 이식했기에, 보드게임의 조작을 어떤 방식으로 편리하게 해결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 만큼 UI/UX에 더더욱 신경 쓰게 되는데, 스플렌더의 디지털 버전과 마찬가지로 윙스팬은 UX가 제법 괜찮게 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새가 그려진 모든 카드의 새들에 약간의 애니메이션이 덧입혀져 있습니다. 게임을 처음 플레이하는 시점에서는, 처음으로 등장하는 새마다 해설자가 나타나 새의 특징에 관해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비록 영어 나레이션이긴 하지만(인게임 텍스트는 모두 한글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생태학자가 옆에서 게임을 해설해주는 기분이 들면서 여러모로 테마에 몰입하기 좋습니다.

 

튜토리얼이 정말 친절하다. 정-말로 친절하게 각 파트를 언제든 다시 볼 수도 있다.

 

보드게임을 디지털로 이식할 때 가끔 놓치기 쉬운 점은, 모든 유저가 항상 이 보드게임이 무슨 게임인지 알고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오프라인으로 스플렌더나 윙스팬을 해본 사람은 스팀에서 게임을 즐긴다고 해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지만, 한 번도 플레이해본 적이 없던 사람이 이 게임을 구매하게 유도하려면 룰 설명에 조금은 더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윙스팬의 튜토리얼은 과하다 싶은 정도로 자세하고 잘 만들어져있습니다. 게임 속의 각 행동에 따라 열여섯 개의 파트로 나누어 전 과정을 소개하고 있고, 언제든 각 파트만 떼어서 다시 볼 수 있게 구성해놓았습니다. 각 과정에서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생태학자가 나타나 이 행동을 하는 이유까지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보드게임 회사들이 날이 갈수록 특히 온라인으로 게임을 구현하는 데에 신경을 더 쓰는 이유는 플랫폼을 오가는 트랜스미디어의 힘에 있기도 합니다. 오프라인으로 게임을 해본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보드게임을 같이 플레이할 사람을 찾기 위해서 넘어오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온라인에서 게임을 한번 플레이해보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면 오프라인의 실제 보드게임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지요! 종이와 플라스틱, 다양한 도구가 들어간 보드게임의 물리적 비용은 게임의 볼륨이 클수록 더욱 커지기 마련인데, 게임을 사기 전에 미리 반값, 심지어 1/4 가격까지도 저렴한 온라인의 게임을 이용해볼 수 있다는 것도 꽤 의미 있습니다.

 

윙스팬에는 수많은 새 카드들이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다이스 타워와 다섯 개의 주사위, 개인 목표 카드, 수많은 알 토큰과 먹이 토큰 등 많은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보는 맛, 손맛이 모두 좋지만 그만큼 세팅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적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온라인으로 보드게임을 옮기는 핵심 이유인 '세팅의 편리성'을 윙스팬에서도 크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주사위를 굴리거나 새로운 카드를 오픈하는 것도 짧지만 모이면 적잖은 시간을 차지하는데, 게임 세팅플레이 시간을 모두 줄여줌으로써 윙스팬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올렸습니다.

 

윙스팬은 1인 플레이를 위한 오토마 규칙이 들어있다. 오토마는 온라인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윙스팬의 인기에 힘을 실어준 또 다른 요소로 '오토마 규칙'이 있습니다. 일정 라운드와 턴에 맞춰 고유의 점수 획득 방식을 취하는 AI인데, 오프라인 오토마를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미 1인 플레이 규칙에 익숙한, 더 나아가 게임의 퍼블리셔인 스톤마이어 게임즈의 오토마 스타일에 익숙한 플레이어라면 어떤 방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가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1:1 플레이라는 느낌보다는 각 턴에 어떤 동작을 수행할지 퍼즐처럼 풀어나가는 재미에 가까우며, 보드게임 매니아들은 이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인이라면 오토마의 무자비한 점수 획득에 기가 꺾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윙스팬은 일반적인 유저의 플레이 패턴을 답습한 AI 플레이어 모드 역시 제공하고 있으며, 취향에 따라 AI 대전 또는 오토마를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처음에 언급한 게임 자체의 한계지만 여러 사람이 동시에 솔리테어를 하는 기분이 다소 있어서,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신경 쓰면서 전략을 구성하는 여타 게임보다 자칫 집중도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로 옮겨지면서 더 심해졌는데, 한 테이블에 모두의 진행 상황이 보이는 오프라인의 윙스팬에 비해 온라인의 윙스팬에서는 게임 내내 나의 화면을 메인으로 띄워놓다 보니 신경 써서 다른 플레이어의 서식지를 방문하지 않으면 솔리테어의 느낌을 더욱 크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온라인 플레이에서 인터넷 지연 시간을 고려했다지만, 각 플레이어의 턴이 최대 5분까지 주어지다 보니 장고 플레이가 이어지면 게임 플레이 시간도 길어지고 지치기 쉽습니다.

 

그래도 윙스팬의 온라인화는 매우 성공적이라 생각하며, 규칙에 익숙한(혹은 익숙해진) 플레이어라면 누구라도 솔로 플레이만으로도 엔진 빌딩 특유의 콤보다양한 새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1인 플레이로 일반 AI(중간 난이도)까지는 수월하게 깼는데, 어려운 AI한테는 번번이 지고 있어서 분합니다. 덕분에 컴퓨터와 싸우며 실력을 키워볼 수 있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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