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틴들(Tyndale)의 생각 공방

야찌 다이스에 대한 고찰

by RE: 아날로그 2022. 9. 24.

요트 또는 야찌(Yacht, Yahtzee)에 대해서 Push-your-luck 장르를 소개하면서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다섯 개의 주사위를 던지면서 진행하지만, 사실 마냥 호락호락한 게임은 아닙니다. 행동은 쉬울지언정, 점수판에 나와 있는 점수 시스템이 결코 쉽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포커의 족보를 따르는 시스템으로 인해 조합이 다소 낯선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며, 찬스 칸의 존재 의의나 상단 보너스(Upper part에서 63점 이상 달성 시 +35점 추가 획득)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에도 게이머의 감각이 없다면 몇 판의 게임만으로 완벽하게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야찌는 수학적인 경험을 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 교구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드게임 중에서도 특히 교육의 소재로 삼기 좋은 친구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배우기 쉽고 이기기 어렵다'라는 것입니다. 룰 설명에 많은 시간이 걸리면 다수의 학생을 상대로 하는 수업에서 애를 먹기 쉬운데, 행동의 선택지가 간단한 게임이면 학생들도 빠르게 게임을 배우고 곧장 친구들과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 고민해야 할 정도로 전략의 깊이가 있다면 더더욱 효과적이겠지요. 그런데 주사위를 굴릴 뿐인 야찌에서 '전략'의 깊이를 논할 수 있냐고요?

 

'전략'이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전쟁을 전반적으로 이끌어가는 방법이나 책략'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전쟁을 게임으로 바꿔서 이해하면 되겠지요. 그래서 게임을 전반적으로 이끌어가는 방법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주사위라는 요소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숫자의 범위가 정해져 있지만, 주사위를 굴려 그중 어떤 숫자가 나올지 정확히 맞힐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야찌에서는 총 세 번의 굴림 기회 동안 어떤 주사위를 고정하여 이용할지 직접 고를 수 있고, 가능성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이 기대하는 확률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섯 개의 주사위를 단 한 번만 굴려서 숫자가 모두 똑같을 가능성은 0.077%입니다. 하지만 야찌의 룰을 적용해 원하는 주사위를 고정하고 나머지를 재굴림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세 번의 굴림 안에 다섯 주사위의 숫자가 모두 똑같을 가능성은 4.603%까지 올라갑니다. 이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마르코프 분석 기법에 따라 각 구간의 확률을 Transition Matrix로 구성하여 이를 거듭제곱하면 되는데, 굳이 이 내용을 초중등 학생한테까지 자세히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고 그 결과를 전달하면서 확률을 어느 정도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맞춰나갈 수 있음을 제시하면 좋을 듯 합니다. 그래도 계산의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Datagenetics 블로그의 링크를 올려드리겠습니다.

 

https://www.datagenetics.com/blog/january42012/

 

Yahtzee Probability

The first few entries are easy to fill in. The probability of moving from state 5 to state 5 is 1.0 Once we achieve a Yahtzee, we're going to keep it and not roll any more dice, so there is 100% certainty we'll keep in this state! If we currently have 4 ma

www.datagenetics.com

 

Winning Moves 社에서 판매하는 Yahtzee. 마케팅 문구와 이미지에서부터 학습과 관련을 지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낯설겠지만 야찌는 이미 오래전부터 학습의 소재로 사용된 바가 있습니다. 1956년 당시 야찌(제품화된 게임)의 마케팅 문구는 "The game that makes thinking fun. (생각하는 재미를 알려주는 게임)"입니다. 어린아이들한테는 숫자를 세고 더하는 훈련이 가능하고, 초등학생한테는 간단한 수준의 확률 공부가 가능하고,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산확률이나 위에서 등장한 통계학적 지식에 이르기까지 더욱 복잡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한테 수업의 교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구조수학적 컨셉을 명확히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커 족보'라는 말만 듣고 '이거 도박 아니에요?'라고 반발심을 가질 수도 있는데, 사실 주사위와 카드 도박에서부터 확률과 통계의 발전이 시작된 것도 어느 정도 맞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당연히 우리는 야찌를 플레이하며 돈을 걸지 않을 테고, 확률에 거는 게임이 항상 도박은 아니라고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포커라는 단어를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도 룰을 설명해도 아무 지장이 없기도 하고요!

 

숫자를 세고 더하는 훈련은 야찌의 상단(Upper part)에서 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고정된 숫자를 얼마나 많이 굴렸느냐에 따라 점수를 받는데, 이를 이용해 덧셈과 곱셈을 이야기하기 좋겠지요. 가령 상단의 [4] 주사위라면 4 주사위를 두 개 굴렸을 때 받는 점수 8, 세 개 굴렸을 때 받는 점수 12와 같이 4 + 4 + 4(덧셈), 4 x 3(곱셈), 4의 배수 개념 등을 필요에 맞게 이야기 꺼내기 좋습니다. 확률을 이야기할 때도 위에서 등장했던 숫자를 직접 구해보면 좋습니다. 단 한 번의 굴림으로 다섯 주사위의 숫자가 같을 가능성(=야찌가 나올 가능성)을 0.077%라고 언급했었는데, 이는 주사위 다섯 개로 만들 수 있는 전체 조합 개수(6 x 6 x 6 x 6 x 6 = 7,776가지)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야찌의 개수(1 야찌, 2 야찌 등 총 6가지)로 구한 확률과 일치합니다(6 / 7,776 = 0.077%)!

 

사실 이 모든 수학교육의 본질은 주사위 그 자체에서 출발합니다. 주사위라는 이산확률 장치를 이용해 직접 굴려보며 숫자와 확률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만약 처음부터 다섯 개의 주사위를 모두 굴리는 게임의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하시면 과감하게 주사위를 두 개 혹은 세 개 정도로 축소한 야찌를 구성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 끝에 우리가 완성한 최종 게임의 형태가 야찌인 것이고, 게임의 형태로 수학적 거부감을 다소 낮출 수 있기에 의미가 더욱 깊다고 생각합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유럽의 각 지역에서 다른 이름으로 즐기던 야찌의 명성을 아이들과 함께 즐겨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