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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들(Tyndale)의 생각 공방

다 빈치 코드와 숫자 퍼즐

by RE: 아날로그 2022. 8. 22.

다 빈치 코드는 블로그의 주제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바가 있습니다. 꾸준히 인기 있기도 하고, 우리한테 잘 알려진 보드게임이지요. 그리고 필자는 이번 학기에도 보드게임을 활용한 방과 후 교육활동을 진행하기에, 이번에는 다 빈치 코드를 활용한 교육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해봅시다. 다른 보드게임과 달리 비교적 그 목적을 뚜렷하게 잡기 좋은데, 게임의 시작점부터가 교육 교구재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보드게임으로 알려지기 이전의 형태인 아루고(Algo, アルゴ)에서는 조커 타일이 없고, 점수를 획득하는 규칙이 따로 명시되어있습니다. 한국에서 현재 유통 중인 다 빈치 코드에서도 득점 규칙을 별도로 기재하고 있는데, 이 득점 규칙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 다른 사람이 가진 타일에 대한 추리에 성공했을 때마다 10점

- (다 빈치 코드) 다른 사람의 마지막 타일에 대한 추리에 성공해 상대방을 게임에서 탈락시켰을 때 50점

- (아루고)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승자는 테이블 가운데에 아직 가져오지 않은 타일당 10점씩 추가 획득

- (다 빈치 코드)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승자는 테이블 가운데에 아직 가져오지 않은 타일의 숫자 합만큼 점수로 획득

- (아루고) 숫자 [6] 타일을 맞힐 때마다 20점

- (다 빈치 코드) 숫자 [6] 타일 또는 조커 타일을 맞힐 때마다 20점

 

주목해볼 점은 바로 [6] 타일인데, 다른 타일도 아니고 숫자 6이 선정된 이유는 무엇일지 아루고의 문제 해결 방법을 분석해보도록 합시다. 아루고를 만든 가켄 사와 일본 산수올림픽위원회 등에서 아루고에서 사용되는 소거법을 소개하고 그 예시의 상황을 제시하는 문제를 제공합니다. 마치 스도쿠처럼, 츠메아루고(詰めアルゴ)라는 이름의 숫자 퍼즐을 통해 게임 타일을 나열해두지 않고도 연습해볼 수 있습니다. 산수올림픽위원회에서 소개하는 츠메아루고의 예시를 같이 살펴보며, 어떤 논리로 숫자를 맞춰나가는지 엿보도록 합시다. (출처: https://www.sansu-olympic.gr.jp/algo/play/play.htm)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주어진 빈칸 중에서 빨간 글씨로 명시된 세 칸의 숫자를 맞추는 퍼즐입니다. 순서대로 하나씩 빈칸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를 따져봅시다. 세 번째 칸(ウ)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는 8, 9, 10, 11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두 검은 타일이 숫자 두 개를 차지하니, 첫 번째 칸(ア)에 들어갈 수 있는 경우의 숫자를 따져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ア가 9라면, イ는 8이 될 것입니다. 7이 들어가는 순간 ウ에 입력할 수 있는 모든 수 8, 9, 10, 11을 대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イ가 8이라면 ウ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숫자는 7인데, 이미 공개된 하얀색 7이 있으므로 이 역시 ウ와 모순을 일으킵니다. 다시 말해, ア가 9라면 대입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모순을 일으켜 불가능한 답이 됩니다. 당연히 그보다 낮은 숫자는 들어갈 수 없겠죠.

 

그래서 ア가 11이라는 명확한 결론을 낳습니다. 검은색 10은 이미 공개되어있으므로 당연히 제외되었고요. 그렇다면 イ에 대입할 수 있는 숫자는 9 이하이며, 위에서 본 논리대로 8 이하의 숫자는 모두 대입할 수 없기에 イ는 9라는 또 다른 명확한 결론이 도출됩니다. 그렇다면 ウ에 입력할 수 있는 숫자는 단 하나, 8이 남았지요? 그래서 정답은 ウ=8, イ=9, ア=11이 됩니다.

 

스도쿠를 풀어보신 분이라면 다소 비슷한 전개 과정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스도쿠에서도, 같은 한 줄 혹은 박스(3x3) 안에 1부터 9까지의 숫자가 단 하나씩만 들어간다는 규칙이 있기에 각 칸에서 가능성이 있는 숫자들을 따져보고 불가능한 수를 제거해나가며 확실한 답을 채워 넣습니다. 아루고에서도 게임의 규칙(모든 타일은 오름차순으로 배치, 같은 숫자가 있으면 검은색이 왼쪽에 놓이도록 배치) 안에서 확실한 숫자와 불가능한 숫자를 따져볼 수 있고, 이렇게 얻어낸 결론으로 또 다른 칸을 추리하면서 숫자를 맞춰볼 수 있습니다.

 

 

이번엔 다른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2인 플레이가 아닌 4인 플레이를 기준으로 배치된 타일을 볼 수 있으며, イ칸에 놓일 수 있는 숫자가 무엇인지를 맞춰야 합니다. 이번에도 맨 윗줄(イ, ウ, 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숫자를 파악해봅시다. イ에 놓일 수 있는 숫자는 단순히 생각해보았을 때 2, 3, 4, 5입니다. 6의 경우 이미 ソ 자리에 검은색 6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또, ス칸의 하얀색 1과 キ칸의 하얀색 3이 보이실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얀색 3의 왼쪽 칸인 ク과 맨 윗줄의 ウ, エ 세 칸을 통틀어 등장할 수 있는 숫자는 0, 2, 4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ウ칸에 5 이상의 숫자가 등장할 수 있지 않냐고요? 만약 ウ가 5라면, イ에는 6 이상의 숫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검은색 6은 이미 사용되었기 때문에 모순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ク칸이 정확히 어떤 숫자가 들어갈지는 장담할 수 없어도, イ에는 5 외에 다른 숫자가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많은 전제조건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확실한 경우의 수를 하나씩 집어낼 수 있기에 이후 게임을 진행하면서 공개되는 정보로 나머지 불확실한 정보를 재구성하면 됩니다. 공개된 상태에서는 (ク,エ,ウ)로 가능한 조합이 (0, 2, 4) 또는 (2, 0, 4)이기 때문에 오른쪽에 앉은 플레이어의 ク타일을 함부로 추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세 칸의 타일이 세 개의 숫자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명확한 정보가 있어 イ를 추리할 수 있게 해줍니다.

 

두 문제를 보면 알 수 있는 특징은 바로 양 끝의 숫자로부터 추리가 전개된다는 점입니다. 0에서부터 시작해 더 큰 숫자를 채워 넣는 추리를 하거나, 반대로 11에서부터 시작해 더 작은 숫자를 채워 넣는 추리를 진행하게 됩니다. 이상 또는 이하의 범위를 설정해 추리하는 방법이다 보니 범위의 명확한 끝인 0 또는 11에서 시작하는 것이 편리하고, 이에 따라 가운데 숫자를 맞추는 것이 보통은 가장 후순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루고와 다 빈치 코드의 점수 규칙 중에 [6] 타일을 맞추면 보너스 점수를 더 주는 것일 테지요! 다만 0부터 11까지는 짝수 개수의 숫자라 정중앙에 해당하는 정수가 없기에, 편의상 6으로 설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5라는 숫자 타일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일본에서 구할 수 있는 츠메아루고 책. 스도쿠처럼 빈 타일의 숫자를 채워넣는 숫자 퍼즐 책이다.

 

다 빈치 코드를 플레이하면서 츠메아루고 문제 풀이에 익숙한 사람은 아무래도 숫자 추리에 조금은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됩니다. 단지 보드게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조커 타일이 들어가 불확정성을 추가하였기에, 플레이어 간 실력 차이를 극복할 기회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칼같이 논리적인 사람들끼리 조커타일 없이 게임을 진행하면 압도적으로 누군가가 나머지 숫자 타일을 다 풀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다 빈치 코드에서 숫자를 맞추는 재미를 강하게 느끼시는 분이라면, 츠메아루고 혹은 스도쿠까지도 꽤 중독성 있게 즐길 것입니다.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숫자 퍼즐이라고 생각하면 다 빈치 코드도 흥미로운 논리 대결을 치르기 좋은 게임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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