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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들(Tyndale)의 생각 공방

게임과 동기부여

by RE: 아날로그 2022. 8. 15.

Motivation, 동기라는 말은 라틴어의 movere- 의 과거분사형인 motus- 가 중세에 와서 motivus- 로 전달되어 지금의 motif- 로부터 그 뜻이 나옵니다. 뜬금없이 라틴어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어원들의 공통된 뜻이 moving, impelling, 또는 pushing away이기 때문입니다. 재촉하고, 밀어붙이고, 이동시키는 것이 동기의 근본 의미일 것이며, 누군가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동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최근 영화관의 관람 비용이 많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조조나 심야영화 할인받으면 두 사람이 만원 한 장으로 영화를 보던 시절은 어디 가고, 한 사람이 영화를 보는데도 13,000원에서 15,000원까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 와중에 가령 마블 스튜디오에서 개봉한 영화가 상영 중이라고 가정해봅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정말 좋아해서 마블의 영화라면 일단 보러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특정 배우의 출연 소식이 있어 궁금해서라도 보러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이전의 마블 작품을 많이 보지 않아 이후의 스토리를 따라잡기 힘들어 안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마블식 히어로 영화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사항은 각자한테 내재적 동기가 될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을 하나로 콕 집어보자면,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또는 하기 싫어서'입니다. 마블의 스토리 혹은 배우를 좋아해서, 마블의 스토리를 따라잡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마블식 스토리 전개를 원치 않아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마블코믹스의 캐릭터들. 단단한 팬덤이 있지만, 간혹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탈한다.

 

자, 그런데 당신의 애인이나 가족이 꼭 마블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합니다. 이악물고 마블을 안 보겠다는 신념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애인 또는 가족의 뜻에 따라 같이 영화를 보러 갈 것입니다. 혹은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공짜 영화관람권을 얻어서 마블 영화를 보는 상황이라면 마찬가지로 '오우, 공짜 영화 좋지'하면서 관람하게 되겠지요. 이 모든 상황은 위와는 다르게 '무언가를 해야 해서, 또는 무언가를 하게끔 상황이 만들어져서' 발생하고 외재적 동기로 작용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외재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기 위해 혹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일을 하고, 회사의 지향점이 내 꿈의 지향점과 일치하지 않는 이상 회사의 업무는 언제나 외재적 동기에 의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당근과 채찍의 일화가 자주 언급되는데, 큰 의미에서 당근도 외재적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물론 모든 활동이 내재적 또는 외재적 동기로 칼같이 구분하기는 힘듭니다. 방금 전 영화의 예시만 하더라도, 나한테 내재적 동기로 작용하던 일도 외재적 동기를 만나 행동의 기조가 바뀌기도 합니다.

 

4학년 슬럼프. (출처: COSA, Dr. Molly B.Thayer)

 

'4학년 슬럼프', 혹은 '4th Grade Slump'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가를 막론하고 초등학교 4학년을 전후로 아이의 학습의욕이 꺾이고, 영재 혹은 천재성에 대한 보고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뇌과학적인 분석, 심리학적 분석 등 다양한 연구가 있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주제를 이어가 보자면 '외재적 동기'가 힘을 잃는 현상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은 보통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힘을 키우는 것에 집중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글자를 읽고 쓰며 책 읽기에 흥미를 붙이는 내재적 요인이 있기를 바라기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학년 학생들 시절에는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스티커를 모으거나, 사탕을 주거나, 심지어는 문화상품권을 줬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다가 단순히 책만 주야장천 읽는 척을 하는 시절을 지나, 독후감과 토론으로 이어지는 고학년 수업으로 진입하면서, 스티커나 사탕 같은 보상은 점점 줄거나 없어지기까지 합니다. 이 단계가 오기 전에 책을 읽는 재미를 어느 정도 붙인 친구라면 참 다행이지만, 가시적인 보상이 줄고 충분한 내재적 요인을 확보하지 못한 친구들은 책 읽기와 공부가 재미없다고까지 느끼게 됩니다.

 

게임은(특히 RPG 장르의 경우) 공부와 달리 아이들, 심지어 어른들도 알아서 일일 퀘스트나 레이드를 클리어하면서 시간을 투자합니다. 공부처럼 '지식과 지혜'라는 당장은 보이지 않는 보상보다는, '골드와 아이템' 등 눈에 보이는 보상이 바로바로 들어오기에 내재적 동기(몬스터를 잡는 액션 자체에서 느끼는 재미)와 외재적 동기(퀘스트 혹은 던전을 클리어하여 얻는 보상)가 균형있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누군가한테 '게임을 3시간 동안 해라!'라고 명령하면 별다른 추가 보상을 주지 않더라도 알아서 신나게 게임을 하겠지만, '벽돌을 3시간 동안 운반해라!'라고 명령하면 보상(급여, 일당)을 주지 않는 이상 일을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부의 사례와 벽돌 나르기의 사례를 합쳐서 생각해봅시다. 외재적 동기(특히 직접적인 보상)가 어떤 일을 시작하게 하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만, 그것에 익숙해질 만큼 장기적으로, 반복적으로 주어지면 그 힘을 잃고, 심지어 이후 외재적 동기를 떼어낼 때 일로부터 이탈하게 만드는 함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에 장기근속하는 사람한테 연봉협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급여를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고, 회원제로 운영하는 서비스에서 결제금액이 클수록 더욱 높은 단계의 계급과 좋은 보상을 제공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게임은 액션 자체의 즐거움(내재적 동기)과 보상(외재적 동기)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출처: CAPCOM)

 

보드게임을 활용한 수업에서 이는 여러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시사합니다. 첫 번째로, 아무리 보드게임이라고 해도, 언젠가 게임에 질리기 마련입니다. 같은 게임으로만 몇 차시 이상 수업을 이끌어나가면 아이들은 뒤로 갈수록 흥미를 잃을 것이며, 게임의 길이나 난이도에 따라서는 심하면 한 차시 이내에서도 아이들이 흥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외재적 동기를 부여해서 학급 내에서 토너먼트 게임을 진행하고, 순위권에 오른 친구들한테 괜찮은 보상을 주는 방법도 물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찍 순위에서 탈락하게 된 친구들이 게임에서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높고, 게임의 스타일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대회를 진행하지 않으면 '늘 이기는 애만 이기잖아요!'라는 볼멘소리를 듣게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내재적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피드백'입니다. 자신의 이해도에 대해 정보를 듣고 싶어할 것이고, 더 쉽게 말해 '게임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 힌트를 주며 전략을 떠올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PC 및 콘솔 게임 중 경영과 타이쿤 장르의 게임이 이런 것이 매우 잘 되어 있는데, 단순히 중간 목표가 될 뿐만 아니라 자원을 운용하는 능력을 점진적으로 키워 더 어려운 도전과제도 불가능이 아닌 '고민해볼 만한' 수준으로 내려오게 하는 힘이 대단한 것입니다. 보드게임에서도 게임의 구조와 난이도에 따라 적당한 중간 목표 및 달성점을 마련해, 아이들이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가 게임의 시스템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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