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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거게임즈 - 기획 이야기

어째서 사람마다 부루마불 룰이 달라요?

by RE: 아날로그 2022. 8. 28.

매장에서 플레이하는 게임 중에 이미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게임은 손님들이 특별한 룰 설명 없이도 알아서 플레이하시곤 합니다. 입이 아프도록 자주 이야기한 할리갈리다 빈치 코드 등은 물론, 어릴 때부터 모두가 한 번쯤은 해본 적 있는 부루마불이나 모노폴리가 또 그런 녀석입니다. 다만, 부루마불은 제가 특별히 손님께 룰 설명을 안 드리는 편인데,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룰이 모두 달라서 자율적으로 플레이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같은 보드게임인데 룰이 다르다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유튜브 채널 'Watch It Played'와 'Today I Found Out'의 내용에 의하면, 설문 참여자의 32%만이 모노폴리의 룰을 읽어보았으며, 참여자의 30%는 모르는 룰이 있을 때 플레이어들의 합의로 임의 룰을 설정해 게임을 진행했다고 말합니다. 부루마불도 모노폴리도 게임 자체의 룰은 변한 적이 없기에 사람들끼리 다르게 알 리가 없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수많은 하우스 룰이 생길 만큼 다양해졌다니 기묘한 일입니다. 이는 어쩌면 수많은 보드게이머들이 부루마불 또는 모노폴리를 썩 좋아하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보드게임 하면 모노폴리라는 편견이 있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그마저도 룰북을 무시하고 모두가 자신이 플레이하고 싶은 대로 룰을 설정하고 즐기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질문을 던져봅시다. 부루마불이나 모노폴리의 룰이 잘못 만든 것일까요? 대부분 사람이 원치 않는 무언가가 있어서일까요?

 

일단 게임의 양상부터 살펴봅시다. 주사위를 굴려 이동하고, 도착한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해결합니다. 빈 땅이라면 구입해서 나의 땅으로 만들 것이고, 다른 플레이어의 건물이 있는 땅이면 통행요금을 지불할 것입니다. 주사위의 뜻대로 움직이다 보니 전략적 선택이 가끔 의미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게임에서 지는 상황이라면 상대방보다 불합리한 주사위 눈금을 마주쳐 수많은 돈을 잃었을 때일 것이고, 그래서 게임에서 느끼는 절망감은 비교적 큰 편입니다.

 

하지만 게임 처음부터 이렇게 큰 절망감을 느낄 이유는 원래 게임대로라면 없습니다. 부루마불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이어가 봅시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모르는 중요한 룰인데, 부루마불은 전반전후반전으로 나뉩니다. 전반전에서는 우선 땅을 모두 구입할 때까지 진행합니다. 빈 땅에 도착하면 땅값을 지불하고 증서를 구입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땅에 도착했더라도 전반전에서는 통행요금을 징수하지 않습니다. 또, 남은 증서가 6장 이하(룰북에 의하면 5~6장) 일 때 경매를 통해 대지를 구입하며, 한 증서를 여러 사람이 희망하는 경우 주사위를 굴려 높은 숫자가 나온 사람이 구입할 수 있습니다.

 

후반전에서부터는 내 땅에 도착하면 건물을 지을 수 있고, 상대방으로부터 통행요금을 징수할 수 있습니다. 즉, 관광지의 경우 전반전에는 구입만 가능하고 통행요금 징수는 불가능합니다. 통행요금을 징수하는 과정에서 지불할 비용이 부족하면 자기 재산을 은행에 판매하거나 증서를 상대방한테 인계할 수 있습니다. 단, 상대방한테 인계할 때는 차액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설명이 덧붙어 있기에, 룰의 헛점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한테 인계하느니 은행에 팔아서 얻은 금액으로 통행요금을 내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또, 게임 중에 대출이 가능하며, 다른 플레이어 한 사람 이상의 동의를 얻어 최대한도 백만 원까지 대출할 수 있습니다. 대출한 금액은 3회전 이내에 분할 상환 혹은 전액 상환해야 하며, 통행요금 징수를 포함해 상환 및 지불 능력이 없으면 파산하게 됩니다.

 

후반전의 규칙에서,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다소 있어 보입니다. 우선 인계와 관련한 규칙은 사실상 거의 쓸모가 없는 규칙입니다. 은행에 건물을 처분하거나 상대방한테 증서를 인계한다는 '선택지'를 주었기 때문에, 차액도 손해 보고 이후 게임 진행에서도 불리해질 수 있는 증서 인계는 결코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 없습니다. 또, 대출 진행도 조금 더 엄밀한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3회전이라는 말이 대출한 시점에서 플레이어가 서 있는 곳을 기준으로 3바퀴라는 말인지, 혹은 시작점을 세 번 밟기 전까지인지 룰북의 설명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또, 대출이 발생했거나 대출금을 분할 상환했다는 증명을 위해 별도의 메모가 필요해서 게임 내의 컴포넌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보가 발생합니다. 누군가가 외워둘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사람의 기억력은 완벽하지 않기에 여러 사람이 대출하게 되면 누가 언제 분할 상환했고 누가 몇 회전을 돌았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규칙에 자의적 해석이 들어간다면 결국 플레이어들은 '모두가 동의하는' 어떤 룰을 임의로 설정해서 게임하게 됩니다. 게임의 제작자한테, 혹은 명확한 룰을 알고 있는 사람한테 해답을 듣기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당장 눈앞에서 진행하는 게임을 이어가고 싶어 할 것입니다. 특히, 부루마불 정도의 볼륨이라면 가족들이 같이 게임할 것인데, 칭얼대는 아이들을 두고 귀찮게 룰을 따져보느니 당장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더욱 맞는 선택일 테고요.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뉘어있는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옵션 게임으로 처음부터 증서를 모두 구입한 후 후반전으로 바로 돌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때 증서를 구입할 수 있는 양도 정해져 있는데, 선 플레이어와 순서를 정한 후 정해진 순서와 양에 맞게 증서를 구입하면 됩니다. 선 플레이어가 1장을 구입하면 순서대로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각각 2장, 3장, 4장의 증서를 구입합니다. 그 다음에 이어, 선 플레이어가 4장을 구입하면 순서대로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각각 3장, 2장, 1장의 증서를 구입합니다. 이를 마치면 다시 선 플레이어부터 남은 땅을 균등한 개수에 맞춰 (4인 플레이 기준 각각 2장씩) 증서를 구입하고, 마지막에 [서울]을 경매를 통해 구입하면 후반전 준비가 끝난 것입니다.

 

정해진 순서와 양이 있어, 규칙에 따라 증서 구입을 진행하는 옵션 룰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방법마저 사람들이 귀찮다고 생각했는지, 전반전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돌아다니며 도착한 땅의 구입과 동시에 건물을 짓는 것까지 실행하곤 합니다. 그래서 초반에 상대방의 건물에 통행요금을 내야 할 때의 타격이 정상적인 게임에 비해 더욱 크며, 처음에 설명한 '절망감'이라는 단점이 드러나는 이유도 과정이 생략된 게임을 즐겨서 더욱더 그랬을 것입니다.

 

두 가지 큰 포인트를 잡고 생각해보면 플레이어가 임의로 룰을 설정해 플레이할 여지가 있는 구간도 있었고, '주사위 게임'이라는 편견 탓인지 복잡할 수 있는 룰은 잘 기억하려 하지 않고 쉽게 풀어나가려고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것이 각각의 집단에서 비롯한 별개의 룰이다 보니 막상 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증서는 은행에 매각할 때 반액에 매각해야 한다'라거나 '파산한 플레이어의 모든 자산은 통행요금을 징수하는 플레이어의 소유로 바뀐다'라는 식의 훨씬 과격하고 짜릿한 방식으로 게임을 하게 됩니다. 일단 우리나라의 사례를 이야기하기 위해 부루마불을 글감으로 꺼내었지만, 모노폴리도 이와 비슷하게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Free-Parking 칸은 말 그대로 쉬어가는 칸인데, 빈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했던 것인지 유독 사람들이 '그동안 쌓인 벌금이나 기부금을 모두 가져가는 곳'으로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모노폴리 IP 보유사인 해즈브로(Hasbro)가 룰북에 직접 Free-Parking 칸의 오류 플레이에 대한 정정 규칙을 추가로 적어야 했을 정도로 말이지요.

 

모두가 동의했고, 모두가 게임에서 불만 없이 재미있게 즐겼다면 뭐라 더 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혼돈한 상태에서는 규칙을 찾지만, 규칙적인 상태에서는 혼돈을 추구하는 것이 또 사람의 심리인지라, 보드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사람들이 자체적인 하우스 룰을 만들어 즐기는 경우가 적잖아 보입니다. 다만, 부루마불과 모노폴리에서는 사람들이 주사위의 운 안에서 게임을 진행하기에 보상의 폭을 늘리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었고, 부루마불과 모노폴리의 하우스 룰들이 원래의 룰에 비해 상대방의 자산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가 더욱 많이 보이곤 합니다. 여러분끼리 상대편 통행요금 때문에 수백만 원을 뺏기고 서로 감정이 상한 것보다는... 그래도 올바른 규칙 안에서 즐거운 게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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