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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와 망자들

by RE: 아날로그 2021. 6. 20.

 

철학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한 번쯤은 프리드리히 니체라는 철학자에 대해 들어봤을 것입니다. 잠깐만, 어려운 이야기가 나올까봐 두려워서 뒤로가기 버튼에 손이 간다면 잠시 진정하시고 이어서 읽어주세요! 니체가 남긴 수많은 사상적 기반과 명언 속에,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문구를 하나 가져와 보겠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 우상의 황혼 中

 

니체가 좌절하지 않는 인간 의지의 위대성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그의 저서에 기록한 문구이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시험이나 취업, 혹은 어떤 인생의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좌우명처럼 많이 언급하는 문장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여러 고난의 관문을 통과하며 성장한다고 말하지요. 즉,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치를 끌어올립니다.

 

이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이,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이나 시련에 따라 자신이 게임에 임하는 태도와 페르소나를 바꾸면서 게임 속에서 성장해나갑니다. 무슨 게임 이야기하는데 이렇게까지 거창한 키워드가 붙냐고요? 실제 사례를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것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어떤 보드게임을 처음 한다고 해봅시다. 게임에 흥미가 있고 승리욕이 있는 사람이라면, 첫 한판을 플레이한 후 바로 꺼내는 말이 있습니다. '나 이제 감 잡았어, 한 판 더 해보자.' 첫 한판으로 게임의 환경에 노출된 플레이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고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지 사고회로가 얼추 갖춰지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입니다.

 

 

2010년대 초반에 등장해 지금까지도 게이머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킨 <다크 소울> 시리즈 액션 게임이 있습니다. 워낙 독특해서 이제는 '소울라이크' 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기존의 RPG 또는 액션 장르처럼 계단식으로 새로운 장비를 얻고 세져서 그다음 몬스터를 잡는 방식의 게임과는 조금 궤가 다른 게임입니다.

 

시작하자마자 당신을 맞이하는 군다의 묵직한 도끼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릴 테고, 로스릭의 높은 벽에 도달할 때 즈음엔 사소한 몬스터의 공격에도 당신의 머리가 날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렇게 플레이어에게 숱한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게임이 왜 인기가 많은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변 환경에 숨겨진 기믹을 찾고, 내 앞에 서 있는 몬스터가 무슨 짓을 할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적절한 타이밍에 가드와 패링으로 몬스터의 공격을 막고 마침내 쓰러뜨렸을 때의 쾌감이 정말 대단합니다.

 

이러한 소울라이크 장르의 게임을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는 위의 예시처럼 숱한 시련과 고통을 겪습니다. 아직은 플레이 스타일이 수동적이고, 몬스터의 액션이 발동된 후에 대응하려고 하다가 목숨을 잃고 재도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몬스터의 행동을 깨닫고 자신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능동적으로 계획을 짜게 되면서, 나중에는 미리 계산한 것처럼 적의 공격에 능숙하게 대응하고 무찌를 수 있게 됩니다. 플레이어는 기회주의자에서 기획자, 즉 능동적 성취자로 페르소나를 진화시키며 게임의 아우라에 온전히 녹아들게 됩니다. 그래서 <다크 소울>과 같은 게임에 한 번 빠져든 사람은 마치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에 로드란 왕국의 망자가 되곤 합니다.

 

흔히들 우리가 잘 만든 게임이라면, 위의 두 예시처럼 플레이어를 바꿀 힘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 판 더해'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오기로 상대방의 행동을 읽고 무찌르는 망자가 될 수 있는 힘이 바로 그것입니다. 게임이 주는 아우라가 페르소나를 형성하기 충분한 것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스토리 혹은 배경 설정이 부가적으로 잘 꾸며져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플레이어가 관찰하고 느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찾을 수 있는 성장 목표치를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게임이 가볍게 즐기는 캐쥬얼 게임이어도, 많은 시간을 들이는 헤비 게임이어도 이 원칙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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